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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엔(尚円) 가나마루(金丸)를 만나다 - 섬의 보물 이제나촌의 사적・문화재

쇼엔(尚円) 가나마루(金丸)를 만나다 - 섬의 보물 이제나촌의 사적・문화재

Main Contents

쇼엔왕가의 유산

왕통과 유서 깊은 보물들 찾기

이제나촌 지정 사적・명승지

사무레미치

또한 이제나촌 지정 문화재인 사무레미치는 이제나 마을에 위치하는 메카루가(銘苅家) 주택과 다마우둔(玉御殿)을 잇는 총 길이 약 2km의 옛길로, 일찍이 구지누시미(公事清明祭)의 참배길이기도 했습니다. 이 길을 통과해 다마우둔(玉御殿) 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덧붙여 사무레란 사무라이 즉 무사를 뜻합니다.

사무레미치

구지누시미

오키나와는 일반적으로 음력 3월에 친족과 문중 사람들이 조상의 묘에 모여 술과 음식들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며 음식을 나눠먹는 '시미'를 지냅니다. 1870년에 시작된 구지누시미(公事清明祭)는 왕족과 관련 깊은 행사로서 슈리 이외의 지역에서 지내는 유일한 시미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미를 지내는 장소는 이제나 다마우둔(玉御殿)입니다. 왕가와 관련 깊은 '유투누치(四殿内)'라고 불리는 메카루(銘苅) 문중, 나카(名嘉) 문중, 이레이(伊礼) 문중, 다마키(玉城) 문중의 관계자 및 이제나 촌장들을 비롯한 공무원 40〜50명 정도가 참석합니다.

구지누시미

당일, 술과 음식들을 조상에게 올리고 참석자들이 향을 피웁니다. 이어서 일어나 손을 모아 절을 하는 동작을 네 번 반복하는 요쓰미하이(四つ御拝)가 거행됩니다. 그리고 차와 술을 따르고 종이돈을 태운 후, 전원이 합장을 합니다. 해에 따라서는 이어서 춤, 노래, 산신 연주 등이 봉납되고 제일 마지막에 참석자 전원이 다 함께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이제나촌 지정 유형문화재 고문서・공예품

메카루 문중 소장품

이제나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역경을 딛고 류큐 국왕의 자리에 오른 쇼엔(尚円). 메카루(銘苅) 가문은 본래 쇼엔의 숙부 집으로 제2쇼씨(尚氏) 초대 국왕이 된 쇼엔은 메카루 가문의 사람들을 지토(地頭)라는 직위에 우대하는 등 다양한 특혜를 주었습니다. 제2대 이후에도 왕가와 메카루 가문과의 밀접한 관계는 계속 되었으며 슈리 조정은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을 메카루 가문에 하사했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하사품에는 고문서와 미술 공예품이 포함되었으며 훗날 이제나촌에 기증되어 현재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장품들은 역사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고 언뜻 보기에도 가치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파 무늬 구슬 주석병(黄色地巴紋御玉貫)

삼파 무늬 구슬 주석병(黄色地巴紋御玉貫)

제사 때 사용하는 주기(酒器)로 900ml 은제의 주석병 두 개가 한 쌍입니다. 유리구슬을 엮어 만든 덮개와 뚜껑으로 장식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구슬 주석병 전문 장인이 제작한 덮개는 노란색 바탕에 흑색, 적색, 백색, 자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양이 매우 컬러풀합니다. 또한 본체가 되는 병 또한 주석(鑄錫) 장인이 제작했습니다. 미술적 기술적으로 매우 고급스럽고 귀중하며 그밖에 슈리성공원, 오키나와현립 박물관・미술관, 나하시 역사박물관 등에서 여러 점이 확인되기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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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나촌 지정 유형문화재 공예품

이헤야의 아무 가나시 하사품

이제나의 유투누치(四殿内) 중 하나인 나카(名嘉)가문은 쇼엔(尚円)의 누나, 마세니카네(真世仁金)가 시집을 간 곳입니다. 왕위에 오른 쇼엔은 나카 가문에 '이헤야노아무카나시(伊平屋の阿母加那志)'라는 직위를 주었습니다. 이는 고급 신녀인 삼십삼군(三十三君)의 한 사람이며 2년에 한 번 슈리성에 입성하여 신년 의식에 참석하는 등 특별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나카 가문의 딸은 대대로 이 신녀직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슈리 조정으로부터 많은 하사품을 받아 이를 소장해 왔습니다. 이것들 중 15점의 미술 공예품이 이헤야노아무카나시가 받은 하사품으로서 1977년 이제나촌의 유형문화재에 지정되었습니다.

비단 자색 의상(絹紫地衣装)

비단 자색 의상(絹紫地衣装)

슈리 조정에서 하사받은 아무카나시(阿母加那志)의 정장용 시키가미(色神) 의상의 겉옷으로 1월 1일(우둔), 시미(다마우둔), 국왕 세습식, 아무카나시 세습식 때 착용했습니다. 오키나와 전쟁 전까지는 1월 1일에 착용했다고 합니다. 겉감은 날실과 씨실 모두 보라색의 고급 견직물로 작은 모란, 대나무, 나비 문양이 들어가 있고 안감은 날실이 적색, 씨실이 무늬가 없는 곤색 가히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쿄 국립박물관이 소장하는 '왕자와 고위 관리와 부인의 그림(王子按司婦人の図)' 중의 대례복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상류 계급의 의상으로 볼 수 있으며 포백(布帛)은 중국제, 바느질은 류큐라고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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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나촌 지정 유형문화재 공예품

니시노후타카야다노아무의 하사품(이레이 가문)

쇼엔(尚円)은 왕에 즉위한 후 숙모에게 '후타카야다노아무(二かや田の阿母)'라는 신녀직을 주었습니다. 신녀가 죽은 후, 숙모의 두 딸이 그 직위를 승계했기 때문에 후타카야다노아무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두 사람이 맡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니시노후타카야다노아무(北の二かや田の阿母)라고 칭하며 이레이(伊禮) 가문의 여성이 그 신녀직을 대대로 승계하게 되었고 언니는 하에노후타카야다노아무(南の二かや田の阿母)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후타카야다노아무는 이헤야노아무카나시(伊平屋の阿母加那志)가 교체되었다는 보고를 위해 슈리성에 수행하거나 제사 때 자리 위치 관계 등으로 아무카나시의 수행 신녀라고 합니다.

니시노후타카야다노아무의 하사품(이레이 가문)

니시노후타카야다노아무도 슈리 조정으로부터 곡옥과 원통형 함 등의 제사도구, 의상을 하사받았으며 파손과 분실, 노후화를 거치면서도 그 일부는 이레이(伊禮) 가문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니시노후타카야다노아무의 하사품(이레이 가문)

이제나촌 지정 유형문화재 공예품

하에노후타카야다노아무의 하사품(다마키 가문)

쇼엔왕(尚円王)의 숙모는 후타카야다노아무(二かや田の阿母)가 되었고 그의 두 딸(쇼엔의 사촌 형제)이 각각 남과 북으로 나누어 그 직위를 승계했습니다. 훼노후타카야다노아무(南の二かや田の阿母)는 다마키(玉城) 가문이 대대로 신녀직을 맡아 왔습니다. 북쪽의 이레이(伊禮) 가문과 마찬가지로 다마키 가문도 제사도구, 의상 등의 하사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초대 후타카야다노아무는 쇼엔왕으로부터 가마(籠)를 하사받아 구지누시미(公事清明祭) 등의 제사 때 사용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다마키 가문과 이레이 가문은 장인에게 의뢰해 각각 새로운 가마를 만들게 하였고 남북의 후타카야다노아무는 이것을 타고 제례의식과 제사에 행차했습니다. 가마를 짊어진 사람은 친족의 젊은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이제나촌 지정 유형문화재 고문서

고문서

류큐왕국 시대의 실상을 나타내는 문헌은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실한 주요 이유로서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와 격렬한 지상전이 펼쳐졌던 오키나와전쟁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한편, 지상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주변섬은 비교적 문헌자료가 잘 남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나섬도 그 중 하나로 특히 촌장을 역임했던 메카루(銘苅) 가문에는 많은 문헌 즉 고문서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슈리 조정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헌이 많으며 류큐왕국 시대의 메카루 가문과 이제나섬의 위치 관계도 엿볼 수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식수 조림에 관한)상소문 사본

(식수 조림에 관한)상소문 사본

19세기 초, 이제나섬에 거주하는 아가리에 페친(東江親雲上)이 하사받은 표창장을 모아서 족자로 만든 것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오른쪽은 부지토(夫地頭)였던 아가리에 페친이 쇼세이왕(尚成王) 때, '세토자시키(勢頭座敷)' 지위에 올랐을 때의 것. 가운데는 쇼코왕(尚灝王) 때, 구시카와섬과 이헤야섬의 다나미 곶에 방조림을 심은 공적으로 '자시키(座敷)' 지위에 올랐을 때의 것. 왼쪽에는 이들 공적을 기려 친구들이 보낸 와카(和歌)가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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