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마루 등장
천명(天命)을 받은 청년의 발자취 찾기
오키나와현 지정 사적
쇼엔왕 생가터 내 '미호소도코로'
쇼엔(尚円)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이제나섬의 쇼미(諸見)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미호소도코로라고 불리는 생가는 현재도 소중하게 관리, 보존되고 있습니다. 생가터에는 후쿠기와 구아바 나무들의 호위를 받는 듯 세 개의 돌이 놓여 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중 한 개의 돌 아래에 쇼엔(尚円)의 탯줄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가축이 땅을 파서 탯줄을 먹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 자리에 돌을 놓았다고 합니다. 덧붙여 '미호소'는 이제나 방언으로 배꼽을 뜻합니다.
쇼엔(尚円) 탄생지인 미호소도코로 옆에 쇼엔왕 우나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쇼엔 탄생 580년을 기념해 정비한 곳으로 아름다운 초록 잔디와 수량이 풍부한 연못이 있는 역사공원입니다. 이곳은 '우나'라는 명칭답게 왕족들이 산책하는 우나(마당)와 같은 기품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슈리성을 방불케 하는 붉은 기와지붕의 관리동 건물 또한 류큐왕국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공원에는 이제나섬 출신의 판화가, 나카 보쿠넨(名嘉睦稔) 씨가 제작한 가나마루(쇼엔)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손에 노를 들고 왼손에 구니가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쇼엔(尚円)이 고향 섬을 떠날 때 마음에 품은 굳은 결의가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제나촌 지정 사적・명승지
슨자가(潮平井)
쇼엔왕 우나공원에는 '슨자가(潮平井)'라는 말발굽 모양의 우물이 있습니다. 이곳은 쇼엔(尚円) 탄생 시 첫 목욕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이제나 방언으로 '우부가'라고도 합니다. 예로부터 식수용으로도 사용했던 우물인데, 쇼엔(尚円)은 이곳의 맑은 물로 태어나 처음 목욕을 했습니다.
이제나촌 지정 사적
가이미지(가이미지부시 발상지)
이제나섬을 대표하는 가요로 '가이미지부시'가 있습니다. 이 가요가 쇼엔(尚円)과 유서 깊다는 점에서 쇼엔 탄생 600년을 기념해 가이미지부시 발상지에 공원이 정비되었습니다. 공원 안의 노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가이미지부시의 노랫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通水や一人超えて知らぬ(가이미지야 히토리코에테 시라누)
乗い馬 と鞍と主と三人(누이우마토 구라토 누시토 산닌)
대강의 뜻은 '가이미지 산을 혼자 넘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알아주는 것은 내가 타고 있는 말과 안장과 주인인 나 셋뿐이구나'입니다.
이제나섬에서 쇼엔(尚円)은 섬 동쪽의 쇼미(諸見)에 살고 있었는데, 서해안 쪽에 가까운 짓차쿠(整理客)에 애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쇼미(諸見)에서 짓차쿠(整理客)에 가려면 울창한 숲으로 덮인 험난한 곳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남겨둔 채, 말을 타고 혼자 돌아가는 쇼엔(尚円)은 못내 아쉬워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그 모습이 이제나촌 출신의 역사학자, 다카라 구라요시(高良倉吉) 씨의 고증을 바탕으로 나카 보쿠넨(名嘉睦稔) 씨의 조형물로 재현되어 훗날 왕이 되는 청년의 애절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나촌 지정 사적
사카타
쇼엔(尚円)이 섬을 떠나는 계기가 된 논을 사카타(逆田)라고 하는데, 이곳 또한 현재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중앙, 나무로 둘러싸인 가느다란 삼각형 부분이그것입니다. 물이 말라버린 다른 논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마르지 않았던 이유는 물이 역류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사카타(逆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쇼엔(尚円)의 논 위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논에 채워진 것입니다.
쇼엔(尚円)은 수리(水利)를 잘 활용하여 농사를 지은 덕분에 그의 논은 항상 벼가 잘 여물었습니다. 류큐왕국 번영의 기초를 마련한 쇼엔(尚円)의 총명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사카타(逆田) 입구에 있는 노래 비석에는 섬에서 제일가는 호남자인 쇼엔(尚円)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섬 처녀들의 심정이 새겨져 있습니다.